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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용후기 하이원포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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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빈목도 댓글 0건 조회 345회 작성일 23-05-31 19:19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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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지는 크게 뜬 눈을 빠르게 굴렸다.

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양의 DM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. 그것도 잔뜩 날이 선 말들이 가득한 내용으로.

DM을 누르는 게 겁이 날 정도였다.

살아오면서 온갖 일을 다 겪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.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로 채워진 DM과 댓글에 연지는 그녀답지 않게 손이 덜덜 떨렸다.


“다들 갑자기 왜 이래?”

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찬양 일색이던 SNS였다. 그런데 자신이 술에 취해 잠이 든 사이에 누가 저격이라도 한 것처럼 욕들이 달려 있었다.

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연지는 심호흡했다.

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일단 파악을 해야 했다.


“침착해야 해. 별일 아닐 거야. 정말 아무 일도 아닐 거야.”

주문을 외우듯 연지는 계속 중얼거렸다. 하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.

꽤 오랜 시간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, 그들을 상대로 일을 해왔던 터라 연지는 인터넷 여론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.

몇 명이 선동하기 시작하면 옳고 그름을 파악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났다. 내 의견과 맞지 않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물타기를 하는 거라고 몰아세우기 일쑤였다.

이렇게까지 나쁜 댓글이 우르르 달리는 걸 보면 어지간한 말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반전은 일어나기 힘들었다.

그래서 연지는 두려웠다.


“내가 거짓말을 했다고?”

최근이 아닌 몇 시간 전에 달린 댓글을 읽어 내려가던 연지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.

[서연지가 말한 연도의 수료식 사진임. 그 해에 동양인은 아예 없었음.]

[예전에 S 칼리지 플로럴 디자인학과 수료한 게 정말 맞냐고 묻는 댓글이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삭제했음. 그런 일이 몇 번 있어서 혹시 몰라 캡처함.]

[내가 그 학교 나왔는데 서연지는 본 적도 없어. 이거 물을 때마다 내 댓글을 삭제하더라? 그때 알았지. 찔리는 게 있는 거라고.]

수료한 게 맞냐며 집요하게 묻던 DM에 신경질적으로 답장을 보냈었다. 정확한 연도와 시기를 말해 버리면 거짓말이 들통날 게 분명해서 그런 질문은 무시했었다. 하지만 오늘은 취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.


“하, 내가 미쳤지.”

연지는 손으로 머리를 툭 때렸다.

눈앞이 캄캄해졌다.

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녀의 두 눈이 이내 생기로 빛났다.


“술기운에 실수했다고 하면 돼.”

친구들과 과음하는 바람에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수료 연도를 잘못 적었다고 주장하면 될 일이었다.

연지는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꽃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자신의 실수였다고,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는 게시글을 올렸다.

이렇게 하면 몇몇 친분 있는 계정주들이 쓸데없는 일로 분란을 일으킨다며 앞장서서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었다.


“진짜 웃겨. 내가 그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학교에 집착해?”

SNS에서 인기가 있는 건 자신이 꽃을 잘 다뤄서가 아니라 예쁜 얼굴 때문이었다. 내내 외모에 열광해 놓고서는 갑자기 학교 이야기 하나에 원수 보듯 하는 팔로워들을 연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.


“행복하게 잘 사는 거 같으니까 질투하는 거야. 꼴사납게, 쯧.”

혀를 차며 연지는 직전에 올린 게시글을 삭제했다. 자신은 오늘 SNS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할 계획이었다. 보낸 DM도 취소하고 연지는 머리를 다시 굴렸다.

혹 무슨 문제가 생기면 삼섭이, 아니 지인이 실수했다고 둘러댈 작정이었다.


 

* * *

법무팀과 회의를 끝내고 나오자 송 실장이 휴대폰을 건넸다.


“마삼섭 씨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습니다.”

“어디서?”

“외부에서 만났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. 부사장님 대신 제가 나가는 게 어떨까요?”

송 실장의 물음에 혁주는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.

달갑지 않아 하는 그의 반응에 송 실장이 마른침을 삼켰다.

밖에서 만나자는 마삼섭의 요구에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길 바랐던 걸까.

송 실장은 사뭇 긴장한 얼굴로 혁주의 대답을 기다렸다.


“대신 나가면 오늘 저녁 약속은 어떻게 할 건데?”

“아, 저녁 약속…….”

송 실장은 아차 하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.

제주도 일을 마무리하고 최근에 서울로 복귀한 그는 샛별과 생이별한 상황이었다. 그런데 지도 교수님의 부탁으로 샛별이 오늘 서울에 온다고 했다.

그것도 저녁 비행기로.

그 이야기를 전하고 난 뒤부터 송 실장은 업무 중간중간 휴대폰을 붙잡고 잇몸이 마를 새 없이 웃곤 했다.

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놓고서는 마삼섭을 대신 만나러 가겠다고 하다니.


“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차이려고 그래?”

“샛별 씨는 이해심이 많아서 제가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건지 설명하면 알겠다고 할 겁니다.”

“정말 그럴 생각이야?”

“…….”

송 실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.

샛별과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. 다른 연인들처럼 자주 만날 수 있으면 모르지만, 그런 상황이 아니니 무턱대고 샛별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라면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다.

오늘 얼굴을 못 보면 언제 또 만날지 쉽게 기약할 수 없었다.


“마삼섭은 내가 만날 테니까 넌 샛별 씨 만나서 데이트나 해.”

“……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?”

“마음에도 없는 소리 자꾸 묻지 마.”

혁주는 휴대폰을 확인하며 집무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.

여러 개의 메시지와 전화 연락이 와 있었다. 그중에 송 실장에게 넘길 건 전달하고 대충 갈무리한 다음 혁주는 마삼섭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.

연결음이 울릴 새도 없이 걸쭉한 마삼섭의 목소리가 들렸다.


― 네, 부사장님.

“저녁이 어떻습니까?”

― 저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니 언제든 괜찮습니다.

“전에 만났던 식당에서 보죠. 하이원포커 고기 맛이 좋더라고요.”

― 알았습니다.

마삼섭이 꺼낼 말이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님을 혁주는 직감했다. 마삼섭은 제법 진지한 용건이 있을 때 서울말을 어색하게 구사하곤 했으니까.

생각해 보면 자신과 그는 좋은 이야기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다.

둘 사이의 공통점이랄 건 서연지뿐이었으니까.

혁주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찍 일을 마무리했다. 은수에게는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남기고 그는 택시를 탔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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